스티븐 잡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다혜 조회 0회 작성일 2020-08-01 11:40:25 댓글 0

본문

스티브잡스 스탠포드 연설 [한영자막] [영어공부]

안녕하세요. 동기부여TV입니다. 기존에는 여러분들이 메일 주소를 댓글에 남겨주시면 제가 일요일에 스크립트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런데 보통 3~4시간 정도 걸립니다. 여러분들과 저의 편의를 위해서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동기부여TV 블로그에 방문하셔서 원하시는 연설 스크립트를 다운 받으시면 됩니다.
오직 영어공부용으로만 다운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블로그를 이제 막 만들어서 하나씩 올리고 있습니다. 만약 요청하신 스크립트가 블로그에 아직 올라가지 않았다면 현재 작업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아래는 제 블로그 주소입니다. 동기부여TV를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기부여 TV 블로그 주소 : https://blog.naver.com/ho3238/221866734420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b8Hw2QqvGH1LWUdUfQIiRw

[Voice]

스티브 잡스 (Steve Jobs)

[Music]

Procession, Secret conversations (No copyright Music)

[Footage]

Pexels (No copyright Footage)

▶FAIR-USE COPYRIGHT DISCLAIMER

1)This video has no negative impact on the original works (It would actually be positive for them)
2)This video is also for teaching purposes.
3)It is not transformative in nature.
4)I only used bits and pieces of videos to get the point across where necessary.


#스티브잡스연설 #스티브잡스스탠포드연설 #영어연설
그릿 영어TV : 안녕하세요. 동기부여TV입니다. 기존에는 여러분들이 메일 주소를 댓글에 남겨주시면 제가 일요일에 스크립트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런데 보통 3~4시간 정도 걸립니다. 여러분들과 저의 편의를 위해서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동기부여TV 블로그에 방문하셔서 원하시는 연설 스크립트를 다운 받으시면 됩니다.
오직 영어공부용으로만 다운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블로그를 이제 막 만들어서 하나씩 올리고 있습니다. 만약 요청하신 스크립트가 블로그에 아직 올라가지 않았다면 현재 작업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아래는 제 블로그 주소입니다. 동기부여TV를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기부여 TV 블로그 주소 : https://blog.naver.com/ho3238/221866734420
김성묵 : 감사합니다
저도 스크립트 받을수 있을까요?^^
Passion6308@hanmail.net
이민호 : 연설 시작부분(0:00 - 0:34)

스티브 잡스의 3가지 이야기
1. Connecting dots(0:34 - 5:16)
2. Love and loss (5:20 -8:43)
3. Death (8:43 - 12:43)

마지막 - Stay hungry and stay foolish(12:43 - 14:15)
rodeo bike : 저친구가 성공을 했으니 먹히는거지,예를 들면 어떤이가 국회의장에 올랐다치자, 그러면 옛날 국민학교 동창들이 하는말, 그분은 어릴제 부터 배짱이 두둑하신분이었지. 하루는 화장실이 가득차있자 교실에 와서
앉은 자리에서 스스럼 없이 싸 버리는 배짱, 보통 사람들로서는 못하는 배짱이라고 칭송한다.
근데 같은 사람이 만약에 길모퉁이에서 신발 꿰메는 수리공으로 일을 하는걸 동창들이 보고는 한단 말이
저친구는 국민학교 다닐때 똥 오줌도 제데로 못가리고 교실에서 똥산친구여 렌다. 둘다
다 같이 교실에서 똥싼게 해석은 전혀 다르다.스티브는 사업으로 성공은 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지녀야 할 인성은 똥이였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다들 잘뒈졌다렌다.
유수형 : 12:11
12:11

13:55
13:55
만월부인 : 2020724

굿..
Noel Seo : 잡스..똑똑한건 인정.
하지만 지 아니었으면
컴에 이쁜 서체 없었을 거다?
좀 늦게 개발되었을 수 있지만
없을거란 말은 자만이지.
Li Sharon Choi : I DIDN'T PAY ATTENTION TO YOU BEFORE! NOW YOU HAVE ALL MY HEART!
이현서 : ''내 죽음을 알리지마라''




''스티브잡스''였나?
민트구름 : 전왜 눈물이 날까요 ㅠ

전설의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 - 세상을 바꾼 1세대 아이폰 2007년 공개 중요 부분 요약 [자체 한글자막]

원본 영상 출처: Macworld San Francisco 2007 Keynote Address https://podcasts.apple.com/kr/podcast/apple-keynotes/id275834665?i=1000026524322

스티브 잡스가 1세대 아이폰을 공개한 프레젠테이션은 컴퓨터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전설적인 사건이다. 이 영상은 1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던 애플의 공개 행사에서 중요한 부분만 30분 정도로 간추린 요약본이다. 미국 시각 2007년 1월 8일 오전 9시에 시작한 애플 맥월드(Macworld) 행사의 오프닝 키노트에서 아이폰은 정확히 오전 9시 41분에 공개되었다.

획기적인 아이폰만큼이나 획기적인 프레젠테이션이었다.
아이폰은 최첨단 컴퓨터 기술의 집약체였지만,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는 일반 사람도 이해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같이 흥분하고 놀라워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을 선사했다.
또한 이런 프레젠테이션은 놀라움을 넘어 그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장난기가 가미되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 프레젠테이션은 단순한 IT 기업의 발표회가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를 위한 하나의 쇼(show)였다.

결국, 아이폰이 세상을 바꿈으로써 이 키노트는 컴퓨터를 넘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이정표이자, 매력적인 프레젠테이션의 본보기로 자리 잡았다.

스티브 잡스는 키노트 마지막에 이 명언을 인용한다:

"나는 퍽(puck)이 있었던 곳이 아니라 있을 곳으로 움직인다."
- 전설의 하키 플레이어 웨인 그레츠키

이 영상을 보는 모두가 그에게 영감을 얻어 자신의 꿈에 대한 동기부여를 얻기 바라는 바이다.

목차:
4:50 멀티터치 UI
8:21 아이폰을 위한 데스크톱 운영체제
10:28 디자인
11:50 터치로 조작하는 아이팟
13:11 혁신적인 휴대폰
17:45 획기적인 인터넷 통신기기
20:24 구글 + 애플 = 스타벅스 장난전화
23:16 3가지를 동시에?!
26:44 그 당시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28:32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
30:35 장난꾸러기 스티브 잡스
33:45 그의 명언

FAQ 1: 아이폰에서 기본 전화 앱으로 그룹(콘퍼런스) 통화가 지금도 되나요?

현재 한국에서도 본 영상에 나온 것처럼 아이폰의 그룹 통화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통화 화면에서 '통화 추가'를 한 다음, '통화 병합'을 하면 다자간 통화가 생성됩니다. 혹은 통화를 하는 도중 다른 사람에게 전화가 오면, '대기 및 응답'이라는 옵션이 뜹니다. 이 옵션을 선택하면 현재 통화는 일시 정지되고 새로운 통화와 연결됩니다. 이 상태에서 똑같이 '통화 병합'을 누르면 그룹 통화가 만들어집니다.

아이폰 그룹 통화 사용 방법: https://apple.co/2UvEEee

FAQ 2: 스티브 잡스는 '스타일러스'를 저렇게 싫어했는데 그렇다면 애플 펜슬은 스티브 잡스의 신념을 무시하는 제품인가요?

지금의 애플펜슬과 스티브 잡스가 2007년에 말한 ‘스타일러스’는 완전히 다릅니다. 스티브 잡스가 위 영상에서 비판한 스타일러스는 아이폰 이전에 존재했던 터치스크린 핸드폰이 그냥 손가락으로 쓰기에는 너무 불편했으므로 기기의 아주 기본적인 조작을 위해서 기본으로 제품과 같이 제공되었던 액세서리였습니다. 반대로 애플펜슬은 노트 필기 및 예술 작품 창작과 같은, 손가락보다 더 정교한 조작이 필요한 특수한 작업을 위한 추가적인 도구입니다. 경쟁사인 삼성 노트 시리즈의 스타일러스도 애플펜슬과 비슷한 맥락에서 창작용 도구이며 스티브 잡스가 말한 스타일러스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tecialist : 다양한 의견은 환영하지만, 특정 대상을 근거 없이 비하하거나(비하의 대상이 애플이든, 스티브 잡스든, 경쟁사이든, 그 누구든 상관없이 모두 해당합니다), 동영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실제 사실이 아닌 잘못된 정보와 가설을 토대로 주장을 하는 댓글은 모두 삭제됩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Love & Drone : 정말 대단하다. 박수를 보냅니다. 상상하고 현실로 만들어서 상용화 시키는 모습이 멋있네요.
Emma Park : 저분 발표좀 보고 배워라....제발...우리 반에 있는 고구마들아...
HoH노래소년 : 스마트폰의 모든게 이미 아이폰3에서 완성되었음 그이후 화면키우고 속도올리고 한것이 다일뿐 혁신 그자체 아이폰
tt k : 2020년에 봐도 멋진ppt다. .
영어영문학과신보라 : 다시 3.5인치 4인치 제품 만들어조라 아이폰의 생명은 한손에 딱 들어와서 기분좋게 해주는 작은 크긴대,,
김슈슈 : 5s까지가 진짜 아이폰이였지..
난 아이폰을 좋아한게 아니라 잡스를 좋아했던걸지도 모르겠다
손흥민 : 역사적인 순간
Geometry Dash PiaNoMen :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덕에 지금의 삼성 갤럭시, LG G 시리즈, 펜택 베가 등 여러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존경합니다.
AI네임 : 스티븐 잡스님은 문과도 이과도 아닌 사과입니다.

스티브잡스(Steve Jobs) 스탠포드 연설(자막포함)

스티브잡스 연설문이라는 영상이 두개로 나누어져 있어서 보기 불편한 것을 합쳤습니다. 고 스티브 잡스의 연설문을 통해서, 그와 같은 인물이 한국에서 꼭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언제나 들어도 힘이 나는군요.

at the Standford university's 114th Commencement on June 12, 2005.
injuny3 :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They said: "Of course."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그 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든다면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 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Thank you all very much.
감사합니다.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번역자 : 미상
------------------------------------------------------------
스티브잡스의 이 연설문은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것 같다.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다시 애플을 위기에서 구하기까지, 그의 발자취를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과 믿음이 만들어낸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포함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 연설문을 읽고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
thbeth : 잘봤어요
WJ K : 듣고 따라 말하기 연습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hg6jHwOI4w
피파 : 온라인에서 온사람 ㄴㄱ?
D.E. Kim : 잡스의 연설 감사하게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정답을 찾고 싶어합니다. 다 듣고 생각하게 되는건 이건것같아요. 만약 그 답이라는것이 내가 생각하는것이랑 다르면 어떠할지... 제 답이 답에 가깝듯이 다른 사람의 답도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제 질문은 이겁니다. 다른 사람의 답이 더 진리에 가까우면 어쩌지?
잡스의 연설은 감동적입니다. 이를 부정하지않아요, 저도 그렇게 느끼는걸요. 다만.. 진짜 답을 찾는 사람으로써는 이 연설이 마냥 답처럼 느껴지지는 않을뿐..
차성민 : 저동중 진로시간 이 연설 보는 학생 조용히
좋아요 누르고가라
오혜림 : 6:21
진꿀이tv : l wont give up on failure and try my hest for myoun work
MINE CHANNEL : 와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중에 가장 많이 보이는 곳이 바로 여기 왜 이런 사람들이 많이 계시더라구요
리사코 : 한국 연봉 수억씩 받는 기업교육강사들 보면 직원들 모아놓고 하는 강의내용 90%이상이 자기자랑 이던데.. 나처럼 사는인생이 곧 교과서다는 식으로... 역시 미국최고기업 ceo마인드는 뭔가 달라도 다르네요

... 

#스티븐 잡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665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Copyright © www.travelrm.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help@oxmail.xyz